사진에 디스크가 보인다고 그게 원인은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지난 글에서 터진 디스크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드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앞 단계입니다. 애초에 그 사진이 지금의 통증을 설명하는 사진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진료실에서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MRI 찍었는데 디스크가 세 군데나 있대요. 협착도 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목소리가 낮아지십니다. 사진에 무언가가 많이 보인다는 것은 몸이 많이 망가졌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진에 보이는 것과 지금 아픈 이유는 생각보다 자주 어긋납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이 치료의 방향을 결정해 버리면, 실제 원인은 그대로 두고 엉뚱한 곳을 오래 다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진에 이렇게 보이는데 수술 안 해도 되나요?"
"검사는 다 정상이라는데 저는 계속 아픕니다."
"디스크가 여러 개라는데 그럼 더 심한 건가요?"
PART 1
아프지 않은 사람의 사진에도 보입니다
이 사실부터 말씀드려야 합니다.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 사진을 찍어 보면, 상당수에서 디스크가 부풀거나 튀어나온 소견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그 비율은 나이가 들수록 뚜렷하게 올라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소견들을 "고장"보다 "나이의 흔적"에 가깝게 설명해 드릴 때가 많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희어지는 것처럼, 디스크도 나이가 들면서 수분이 빠지고 납작해지고 가장자리가 밀려 나옵니다. 이건 병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간 자국입니다. 주름이 있다고 얼굴이 아픈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물론 반대 방향도 있습니다. 사진이 깨끗한데 몹시 아프신 분들도 계십니다. 근육과 근막, 관절, 그리고 통증에 대한 신경계의 민감도는 사진에 찍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 근막통증증후군 글에서 "담"의 정체로 다룬 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진은 구조를 보여 주지만 통증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만으로 원인을 정하지 않는 것이 제가 지키려는 원칙입니다.
PART 2
그럼 무엇으로 원인을 정하는가
핵심 단어는 하나입니다. "일치하는가." 사진에 보이는 자리와 실제 증상이 나타나는 자리가 맞아떨어지는지를 봅니다.
허리에서 나오는 신경은 각각 담당하는 구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높이의 신경이 눌리느냐에 따라 저린 부위, 힘이 빠지는 근육, 반사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진찰만으로도 어느 높이가 문제인지를 상당 부분 좁힐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실제로 확인하는 것들
① 저림이 어디까지 내려오는지
엉덩이까지인지, 허벅지 뒤인지, 종아리 바깥인지, 발등인지, 발바닥인지. 이 경로가 어느 신경의 구역과 맞는지를 봅니다. 사진의 소견이 그 신경과 다른 높이에 있다면 보이는 것과 아픈 것이 어긋난 경우입니다.
② 어느 근육에 힘이 빠지는지
발목을 위로 들어 보고, 엄지발가락을 밀어 보고, 발끝으로 서 보고, 뒤꿈치로 걸어 봅니다. 근육마다 담당하는 신경이 달라, 어느 동작이 약한지가 위치를 알려 줍니다. 이건 사진보다 정확한 정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③ 자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앉으면 심한지 서면 심한지, 앞으로 숙이면 편한지 뒤로 젖히면 편한지. 디스크와 척추관 협착증은 편한 자세가 서로 반대입니다. 전에 척추관협착증 글에서 이 차이를 자세히 다뤘습니다.
④ 다리를 들어 올려 봅니다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곧게 편 채 올려 봅니다. 신경이 자극받는 상태라면 특정 각도에서 다리로 내려가는 증상이 재현됩니다. 간단하지만 정보가 많은 진찰입니다.
⑤ 허리가 아닌 곳도 함께 봅니다
엉덩이 깊은 곳의 근육, 고관절, 그리고 다리로 가는 혈관. 다리 증상의 원인이 허리가 아닌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전에 이상근증후군 글에서 "디스크가 아니었습니다"로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 확인들이 사진과 맞아떨어지면 그 소견이 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맞지 않으면, 사진에 아무리 크게 보여도 그것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구조를 보여 주지만
통증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PART 3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흔한 오해들
✕ "사진에 보이니까 그게 원인이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흔히 발견되는 소견입니다. 보인다는 것과 지금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진찰 소견과 일치하는지로 합니다.
✕ "디스크가 여러 개면 더 심한 거죠"
개수는 심각도와 잘 비례하지 않습니다. 여러 마디에 변화가 보이는 것은 나이가 들면 흔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개수가 아니라, 그중 하나가 실제로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가입니다.
✕ "협착이 있다니 결국 수술이겠네요"
협착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실제보다 큽니다. 영상에서 좁아 보이는 정도와 증상의 정도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단 기준은 사진이 아니라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거리와 근력입니다. 전에 협착증 치료와 수술 시점 글에서 다뤘습니다.
✕ "정확히 알려면 MRI부터 찍어야죠"
정보가 많은 검사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모든 분께 권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허리 통증은 몇 주 안에 좋아지고, 초기에 찍은 사진이 오히려 불안을 키우고 필요 이상의 처치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 "검사가 정상이라니, 제가 예민한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근육과 근막, 관절에서 오는 통증은 영상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상 없음"은 "위험한 원인은 없다"는 뜻이지 "안 아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통증은 대개 다룰 방법이 있습니다.
PART 4
그럼 언제 찍는가
검사를 피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필요할 때는 미루지 않고 권해 드립니다. 기준을 적어 두겠습니다.
1. 위험 신호가 있을 때 — 즉시
대소변 조절의 변화, 진행하는 근력 저하, 발열이나 원인 없는 체중 감소, 다친 뒤 시작된 통증, 안정 시에도 심해지는 야간통. 이 경우에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확인합니다. 아래 경고 목록과 같습니다.
2. 치료 방향을 바꿔야 할 때
보존적 치료를 충분히 했는데도 다리 증상이 그대로일 때입니다. 주사나 시술, 수술처럼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다음 단계를 계획할 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3. 진찰과 사진이 어긋날 때
증상이 특정 신경의 구역과 잘 맞지 않거나, 예상과 다른 양상일 때입니다. 다른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넓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4. 이미 찍으셨다면 — 다시 찍지 않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찍으신 자료를 가져오시면 대개 그대로 씁니다. 영상 시디나 결과지를 챙겨 오시면 같은 검사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실 때 꼭 챙겨 주세요.
5. 읽는 방법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판독지에는 낯설고 무서운 단어들이 나옵니다. 팽윤, 돌출, 탈출, 협착, 퇴행성 변화. 그중 어느 것이 지금 증상과 관련이 있고 어느 것이 나이의 흔적인지를 구분해 드리는 것도 진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 때문에 몇 달을 불안해하시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PART 5
왜 이 이야기가 비수술과 이어지는가
오늘 글의 마지막입니다. 영상과 증상이 어긋난다는 사실이 왜 치료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진으로 결정하면 생기는 일
① 원인이 아닌 곳을 다루게 됩니다
사진에 보이는 소견이 원인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겨냥한 처치는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효과가 없으면 대개 "더 강한 처치"로 올라갑니다. 방향이 아니라 강도를 올리는 것이라 결과가 잘 달라지지 않습니다.
②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 앞당겨집니다
비수술은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 바꿀 수 있습니다. 수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확신의 정도가 높지 않을 때는 되돌릴 수 있는 쪽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③ 불안이 통증을 키웁니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내 허리가 망가졌다"는 인식은 움직임을 줄이고, 움직임이 줄면 근육이 빠지고 통증은 커집니다. 사진을 정확히 설명해 드리는 것만으로 통증이 줄어드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④ 진짜 원인은 대개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진찰에서 드러나는 원인은 근육의 과부하, 자세, 특정 동작, 약해진 몸통 근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부 손댈 수 있는 것들이고, 사진을 바꾸지 않아도 생활이 달라집니다.
⑤ 그렇다고 사진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진찰과 사진이 일치할 때 그 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수술이나 시술을 계획할 때는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사진은 순서상 뒤에 오는 것이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과 관계없이 즉시 진료가 필요한 신호
대소변 조절에 변화가 있거나 안장에 닿는 부위의 감각이 둔할 때 — 즉시 응급 진료
양쪽 다리에 함께 힘이 빠질 때, 갑자기 걷기 어려워질 때
발이 끌리거나 발목·엄지발가락이 들리지 않을 때
열이 나거나 이유 없이 체중이 줄면서 허리가 아플 때
다친 뒤 시작된 통증일 때, 골다공증이 있으시거나 넘어지신 뒤라면 더욱
가만히 있어도 심해지고 밤에 통증으로 깰 때
암을 앓으신 적이 있으시거나 치료 중이신 경우의 새로운 허리 통증
정직하게
네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영상 검사를 반대하는 글이 아닙니다. 필요한 상황에서는 미루지 않고 권해 드리며, 위험 신호가 있을 때는 즉시 확인합니다. 이 글은 순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 "사진에 보이는 것은 다 나이 탓"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진찰 소견과 일치하는 소견은 실제 원인이며, 그때는 그것을 정확히 다룹니다. 셋째, 진찰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진찰에도 한계가 있고, 애매한 경우에는 검사로 확인하는 것이 맞습니다. 넷째, 판독지의 단어 때문에 불안하시다면 그것 자체가 진료의 이유가 됩니다. 무엇이 지금 증상과 관련이 있고 무엇이 아닌지를 설명해 드리는 데 시간을 쓰려고 합니다.
3줄 요약
허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의 사진에서도 디스크 소견은 흔히 발견되고, 나이가 들수록 늘어납니다. 반대로 사진이 깨끗한데 몹시 아프신 분도 계십니다. 사진은 구조를 보여 줄 뿐 통증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판단 기준은 "일치하는가"입니다. 저림이 내려오는 경로, 힘이 빠지는 근육, 자세에 따른 변화, 다리 들어 올리기. 이 진찰 소견이 사진의 위치와 맞아떨어질 때만 그 소견을 원인으로 봅니다. 개수가 많다고 더 심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비수술을 먼저 두는 이유와 이어집니다. 확신이 높지 않을 때는 되돌릴 수 있는 쪽부터 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소변 변화, 진행하는 근력 저하, 발열·체중 감소, 외상 후 통증, 야간통은 사진과 관계없이 즉시 확인합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진료실에서 사진을 나중에 봅니다. 먼저 여쭙고 만져 보고 걸어 보시게 한 다음, 머릿속에 어느 정도 답을 정해 놓고 사진을 엽니다. 순서를 바꾸면 사진에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크게 보이는 소견 앞에서는 사람의 눈이 쉽게 흔들립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라 이 순서를 지키려고 합니다.
"디스크가 세 군데나 있대요"라고 하실 때, 저는 대개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중에 다리가 저린 쪽과 맞는 게 있는지 같이 볼까요." 그리고 맞는 것이 하나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머지 두 개는 오늘 아픈 것과 상관이 없고, 앞으로도 아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나가시는 분들의 걸음이 들어오실 때보다 가벼워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그것도 치료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MRI 결과를 듣고 걱정이 크시거나, 판독지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몰라 불안하시다면 편하게 오세요. 사진에 보이는 소견 중 무엇이 지금 증상과 관련이 있고 무엇이 나이의 흔적인지 구분해 드리고, 진찰로 확인한 원인에 맞는 치료 방향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찍으신 영상 자료를 가져오시면 다시 찍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가 검사나 수술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연계해 드립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고, 다산에서는 8호선으로 한 정거장입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본 글은 요추 영상 검사의 해석에 대한 일반적인 건강 정보 칼럼이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설명한 영상 소견과 증상의 불일치는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설명으로, 개별 환자에서 영상 소견의 임상적 의미는 진찰 소견과 종합하여 전문의가 판단해야 합니다. 영상 검사의 시행 여부와 시기는 증상, 신경학적 소견, 경과를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결정되며 본문은 검사를 지연하거나 회피할 것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배뇨·배변 장애나 안장 부위 감각 저하, 양측 하지의 근력 저하, 진행하는 족하수, 발열이나 원인 불명의 체중 감소를 동반한 요통, 외상 후 발생한 통증, 안정 시 악화되는 야간통, 악성 종양의 병력이 있는 경우에는 즉시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특정 검사나 치료 방법의 우열을 주장할 목적이 없으며 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