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컬럼피 한 방울의 거짓말 — 테라노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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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의 거짓말 — 테라노스 사건, 의사의 눈으로

연세편한재활의학과의원 · 홍진오 원장  |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합니다. 테라노스(Theranos)와 엘리자베스 홈즈 사건이요. 흔히 "스타트업 투자 사기"로 소개되는데, 저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건 투자 사건이기 이전에 의료 사건입니다. 돈을 잃은 사람보다 잘못된 검사 결과를 손에 쥔 환자들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오늘은 현직 의사의 눈으로 이 사건을 짚어보겠습니다.

"피 한 방울로 다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검사는 많이 할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요즘 집에서 하는 검사 키트는 믿을 만한가요?"

PART 1

무슨 일이 있었나

2003년

열아홉 살에 회사를 세웁니다. 내건 약속은 강렬했어요. "손끝에서 뽑은 피 한 방울로 200가지가 넘는 검사를 할 수 있다."

성장기

기업가치가 약 90억 달러까지 평가받고 7억 달러 이상을 유치합니다. 이사회에는 전직 국무장관과 장군 같은 거물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5년

언론 보도로 기술이 약속과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상당수 검사를 자체 장비가 아닌 기존 상용 장비로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후

2018년 회사가 해산되고, 창업자는 투자자에 대한 사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형량은 약 11년(135개월), 배상 명령은 4억 5천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법적으로 핵심은 명확합니다. 기술 개발에 실패한 것이 죄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것을 검증됐다고 설명해 투자를 받은 것이 죄였습니다. 스타트업의 실패는 범죄가 아니지만, 중요한 사실을 허위로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거죠.

PART 2

의사라면 어디서 갸웃했어야 하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의료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 한 방울로 200가지"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들리는 문장이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1. 손끝의 피는 정맥의 피와 다릅니다

채혈을 정맥에서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손끝을 찔러 짜내면 조직액이 섞이고, 짜는 과정에서 세포가 터집니다. 그러면 칼륨처럼 세포 안에 많은 성분은 실제보다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시각인데 어디서 뽑았느냐로 값이 달라집니다.

2. 검사에는 최소한의 양이 필요합니다

혈액 속 물질 중에는 아주 미량으로 존재하는 것이 많습니다. 적은 양을 여러 검사에 나누려면 희석해야 하는데, 희석하면 그 미량 물질은 검출 한계 아래로 떨어집니다. 이건 장비를 잘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한계에 가깝습니다.

3. 재현성이 생명입니다

검사는 같은 검체를 두 번 돌렸을 때 같은 값이 나와야 합니다. 손끝 채혈은 찌른 깊이, 짜낸 정도, 첫 방울인지 두 번째 방울인지에 따라 값이 흔들립니다. 임상에서 쓰려면 이 흔들림이 허용 범위 안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그 증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제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대목은 기술 자체가 아닙니다. 이사회에 검사의학을 아는 사람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이에요. 명망 있는 정치인과 군인은 있었지만, "그 값이 정말 재현되나요?"라고 물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의료 기업의 이사회에 의료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 지금 보면 그것부터가 신호였습니다.

PART 3

그런데 지금은 — 피로 진단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여야 공정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그런데 요즘은 피로 암 검사도 하지 않나요?"라고 물으신다면, 그 지적이 맞습니다. 테라노스가 꿈꿨던 방향 자체는 지금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습니다.

1. 액체생검 — 혈액으로 암의 유전자를 봅니다

종양이 혈액 속으로 흘려보낸 DNA 조각(ctDNA)을 잡아내 유전자 변이를 확인합니다. 그 결과로 어떤 표적치료제가 맞는지를 고릅니다. 폐암처럼 조직검사가 어려운 위치일 때 특히 유용해서, 국내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2. 면역항암제 영역에서도 혈액검사를 씁니다

혈액으로 종양의 변이 부담(bTMB)을 평가해 반응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치료 중에 ctDNA 양이 줄어드는지를 추적해 효과를 봅니다. 영상 검사보다 먼저 재발 신호를 잡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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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술 후 '미세잔존질환' 확인

수술로 다 떼어냈는지를 혈액으로 확인해 항암치료를 더 할지 말지 판단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4.사실 한 방울로 하는 검사는 원래 있었습니다

혈당 자가측정이 그렇고, 신생아 발뒤꿈치 채혈 선별검사도 몇 방울로 합니다. 그러니 "적은 피로 검사한다"는 것 자체는 새로운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달랐을까요. 경계가 분명합니다.

테라노스의 주장

손끝 한 방울로

200가지 이상 전부

검증 자료는 영업비밀이라 비공개

한계에 대한 설명 없음

실제 액체생검

정맥에서 튜브 여러 개 분량

특정 유전자·특정 목적에 한정

조직검사와의 일치도를 논문·허가로 입증

못 잡는 경우를 명시

역설적인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면, ctDNA는 혈액 속에 극히 미량이라 오히려 '더 많은 피'가 필요합니다. 희석하면 안 되니까요. 즉 의학이 간 방향은 "적은 피로"가 아니라 "덜 아프게, 대신 충분한 양으로, 목적을 좁혀서"였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테라노스가 틀린 것은 "가능하다"가 아니라 "이미 검증됐다"였습니다. 목표는 훌륭했고 실제로 실현되고 있어요. 다만 지금의 액체생검은 그들이 건너뛴 바로 그 검증 절차를 통과해서 왔습니다. 그 차이가 20년을 갈랐습니다. 덧붙여 혈액에서 안 나왔다고 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종양이 DNA를 충분히 흘리지 않으면 안 잡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조직검사가 여전히 기준입니다.

PART 4

진짜 피해자는 투자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이 저에게 특별한 이유입니다. 언론은 대개 날아간 투자금을 이야기하지만, 의사에게 더 무거운 건 그 검사지를 받아 든 사람들입니다. 검사 결과가 틀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잘못 '있다'고 나오면(위양성)

암이나 감염이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추가 검사와 조직검사로 이어집니다

몇 주간의 공포를 겪습니다

필요 없는 치료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 '없다'고 나오면(위음성)

있는 병을 없다고 믿게 됩니다

증상이 있어도 안심하고 넘깁니다

치료 시기를 놓칩니다

이쪽이 훨씬 위험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암 표지자, 감염 검사, 전해질 수치 등에서 잘못된 결과가 통보돼 환자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는 사례들이 보도됐습니다. 검사지 한 장 때문에요.

제가 진료실에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검사 결과는 숫자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입니다. 근거가 틀리면 그 위에 쌓은 판단이 전부 틀립니다. 그래서 의학에서 진단 기기의 정확도는 편의성보다 언제나 앞에 옵니다. 아무리 간편해도 틀리면 안 쓰느니만 못하니까요.

PART 4

의학은 기술을 이렇게 검증합니다

그럼 제대로 된 의료 기술은 무엇이 다를까요. 절차가 지루할 만큼 정해져 있습니다.

1. 공개하고 검증받습니다

방법과 결과를 논문으로 내고 동료 심사를 받습니다. 다른 연구자가 같은 방법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기존 방식과 나란히 비교합니다

새 검사법은 기존의 표준 검사와 같은 검체로 비교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보여야 합니다. 이걸 건너뛸 방법은 없습니다.

3. 규제 기관의 허가를 받습니다

진단 기기는 어떤 항목을, 어떤 조건에서 쓸 수 있는지가 허가 범위로 정해집니다. "무엇이든 다 됩니다"는 허가의 언어가 아닙니다.

4. 그래서 — 검증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신호입니다

테라노스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검증 요구를 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에서 "비밀이라 보여드릴 수 없다"는 답은 답이 아닙니다. 감출수록 의심해야 하고, 이건 지금도 유효한 기준입니다.

PART 5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먼 나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간편한 검사가 넘칩니다. 집에서 하는 키트, 수십 항목을 한 번에 본다는 검진 패키지, 몇 방울로 알려준다는 서비스들이요.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 검사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데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아무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수십 가지를 무작정 돌리면, 그중 몇 개는 통계적으로 그냥 비정상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진짜 병이 아닌데도 추가 검사와 걱정이 시작됩니다. 검사는 의심되는 이유가 있을 때 그 이유에 맞춰 고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2. "간편함"은 정확도의 근거가 아닙니다

편리한 것과 맞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새로운 검사 이야기를 들으시면 "이거 기존 검사랑 비교한 자료가 있나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검증했나요?" 두 가지만 물어보셔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지금 AI 의료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 역시 관심 있게 보고 있고, 좋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테라노스가 남긴 질문은 그대로 유효합니다.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나, 어떤 환자군에서 검증했나,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나. 기술이 바뀌어도 물어야 할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검사 결과는 숫자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입니다.

근거가 틀리면 그 위의 판단이 전부 틀립니다."

정직하게

네 가지를 덧붙입니다. 첫째, 저는 법률가가 아닙니다. 본문의 사건 경과와 판결 내용은 공개된 수사·재판 자료와 언론 보도에 근거한 것이고, 법적 평가는 제 영역이 아닙니다. 둘째, 새로운 기술을 전부 의심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은 양의 검체로 하는 검사도, 집에서 하는 검사도 제대로 검증된 것들은 실제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검증을 건너뛰는 것입니다. 셋째, 건강검진을 받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국가 검진처럼 근거를 갖고 설계된 검진은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제가 말씀드린 건 이유 없이 항목만 늘리는 검사에 관한 이야기예요. 넷째, 의료계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초기에 더 크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 책임이 있고, "간편하고 싸게"라는 말에 우리도 흔들렸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줄 요약

테라노스 사건의 핵심은 기술 개발 실패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것을 검증됐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창업자는 투자자 사기로 유죄를 받았습니다. 다만 의사에게 더 무거운 건 잘못된 검사지를 받아 든 환자들입니다.

의료 현장에서 "피 한 방울로 200가지"가 이상하게 들린 이유 — ①손끝 피는 정맥 피와 성분이 다르고 ②검사에는 최소한의 양이 필요하며(희석하면 미량 물질은 검출 불가) ③재현성이 증명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사회에 검사의학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부터가 신호였습니다.

제대로 된 의료 기술은 논문·동료심사·기존 검사와의 비교·규제 허가를 거칩니다. "비밀이라 보여줄 수 없다"는 답은 과학에서 답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훈 둘 — 검사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게 아니고(증상 없이 수십 항목을 돌리면 위양성이 나옵니다), 간편함은 정확도의 근거가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이 사건은 실리콘밸리의 "될 때까지 되는 척하라(Fake it till you make it)"는 문화가 의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앱은 다시 만들면 되지만 잘못된 검사지를 받은 사람의 몇 주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의학이 답답할 만큼 느리게 검증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느림이 사람을 지킵니다.

진료실에서 검사 결과지를 함께 보는 시간을 저는 꽤 길게 씁니다. 숫자 옆에 붙은 화살표 하나로 밤잠을 설치신 분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뜻하지 않는지 설명해 드리는 것까지가 검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으셨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불안하시거나, 통증과 관련해 어떤 검사가 정말 필요한지 궁금하시면 편하게 상담 오세요. 결과지를 함께 보며 지금 확인이 필요한 것과 지켜봐도 되는 것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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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공개된 수사·재판 자료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전달·교육 목적의 칼럼이며, 특정 기업이나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없고 법적 평가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건의 구체적 경과와 처분 내용은 자료에 따라 다르게 서술될 수 있으므로 정확한 내용은 공식 자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검사 관련 설명은 일반적인 원리를 쉽게 풀어 쓴 것으로 특정 검사·제품의 성능을 평가하지 않으며, 검사의 필요 여부와 해석은 증상·병력에 따라 다르므로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본 글은 국가건강검진 등 근거에 기반한 검진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