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포기하지 마세요, 사실 저도 아직 아픕니다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존경하는 선배님과 술 한잔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사실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계속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허리 주사를 놓으면서 평소처럼 말씀드렸습니다.
"주사 맞고 나시면 조금 뻐근하고 우리한 느낌이 드실 거예요."
그러자 환자분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원장님은 직접 맞아보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놓는 주사는 대부분 제가 먼저 맞아봤습니다."
그러자 환자분이 깜짝 놀라시더군요.
"원장님도 어디가 아프셨어요?"
그 질문을 듣는데 문득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실 저는 의사이기 전에 꽤 오랫동안 환자였습니다.
어쩌면 의사로 살아온 시간보다 환자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생 때였습니다.
몸을 키워보겠다고 운동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때는 젊었고, 몸은 무한정 버텨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허리가 아파도 참고,
어깨가 아파도 참고,
무릎이 붓고 쑤셔도 참고 운동했습니다.
그게 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대로 눕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똑바로 누울 수 없었고, 엎드린 자세로 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어깨 통증 때문에 필기를 할 수 없어 수업을 녹음해 놓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남들은 당연하게 하는 일들이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치료를 찾아다녔습니다.
좋다는 치료는 정말 다 해봤습니다.
도수치료도 받아보고,
주사도 맞아보고,
시술도 받아보고,
수술도 해보고,
명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방까지 찾아갔고,
심지어 해외까지 가서 치료를 받아봤습니다.
그때 제 하루는 통증으로 시작해서 통증으로 끝났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조금 덜 아플까 생각했고,
잠들기 전에는 내일은 괜찮아질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습니다.
통증은 사람의 몸만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마음도 같이 갉아먹습니다.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좋아지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은 괜찮아 보인다고 하는데 나만 힘들 때,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나'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은 점점 지쳐갑니다.
저도 많이 무너졌습니다.
많이 화도 났고,
많이 억울했고,
많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포기하는 순간 정말 평생 아플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조금 좋아지면 운동하고,
다시 아프면 쉬고,
또 치료받고,
또 버티고.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 지금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은 회복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통증이 있습니다.
밤에 자다가 허리 때문에 깨는 날도 있고,
아침에 몸이 굳어 힘든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저를 생각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분들께 늘 말씀드립니다.
"통증, 포기하지 마세요."
사실 그 말은 환자분들께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게도 계속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아직도 통증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통증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통증과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조금 알게 된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분들이 아프다고 말씀하시면 어느 정도는 압니다.
주사가 들어갈 때 어떤 느낌인지,
침대에 누울 때 어떤 기분인지,
밤에 통증 때문에 잠이 깨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저도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프면 참지 마세요.
그리고 병원에서 큰 병원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꼭 가보세요.
제가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치료받을 걸.'
그 후회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초진 환자분들에게 바로 대학병원 검사를 권해드릴 때가 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치료 시기를 놓쳐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의사로서의 판단이기도 하지만,
같은 환자로서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술 한잔 마시고 쓰다 보니 괜히 말이 길어졌네요.
그래도 가끔은 의사 가운을 벗고, 한 명의 환자로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통증과 싸우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조금만 더 버티시고,
조금만 더 자신을 돌봐주세요.
생각보다 우리 몸은 오래 걸리더라도 조금씩 좋아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아직 그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좋은 밤 되십시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