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컬럼첫 스승은 말이 없었습니다 — 해부학…
에세이

첫 스승은 말이 없었습니다 — 해부학·히포크라테스 선서·시신기증에 대한 생각

연세편한재활의학과의원 · 홍진오 원장  |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지난 글에서 의대 6년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성적표엔 남지 않지만 평생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 6년의 가장 앞자리, 본과 1학년에 해부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부학 실습대 위에는 말이 없는 첫 스승이 계셨어요. 오늘은 해부학과 시신기증,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두고 제가 오래 품어온 생각들을 나눠보겠습니다.

스무 살 어느 봄, 저는 처음으로 '죽음'을 마주했습니다.

이분은 왜, 마지막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을까.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

하나첫 스승은 말이 없었습니다

의대생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아주 가까이 마주하는 곳이 바로 해부학 실습실입니다. 교과서의 그림이 아니라, 실제 한 사람의 몸 앞에 서는 순간이죠. 처음엔 두렵고, 손이 떨리고,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서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의대생들은 이 몸의 주인을 '첫 스승', '무언의 스승'이라고 부릅니다. 말 한마디 없이, 오직 자신의 몸으로 근육과 신경과 혈관이 어떻게 얽혀 사람을 살아 있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니까요. 저는 지금도 통증 환자의 근육과 신경을 떠올릴 때, 그 첫 스승에게서 배운 지도를 마음속에 펼칩니다.

둘왜 누군가는 몸을 내어주는가 — 시신기증

그 첫 스승은 우연히 그 자리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생전에, 스스로, "내 몸을 의학 교육에 써 달라"고 결정하신 분들이에요. 이것이 시신기증입니다.

저는 이 결정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래의 의사들을 위해 내어놓는 것 — 그건 정말 크고 조용한 사랑이거든요. 한 분의 기증이 수십 명의 의사를 길러내고, 그 의사들이 다시 수많은 환자를 살립니다. 그래서 많은 의과대학은 실습을 마치면 기증자와 유가족을 기리는 감사·추모의 예(위령제)를 올립니다. 배움이 끝이 아니라, 감사로 매듭짓는 것이죠.

그러니 혹시 시신기증을 생각해 보신 적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 마음 자체가 이미 귀합니다. (다만 절차·조건은 각 기관·법령에 따라 다르니, 관심이 있으시면 해당 대학·기관에 정확히 알아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런 결정을 하신 모든 분들께, 한 사람의 의사로서 늘 빚진 마음입니다.

셋그리고 약속 —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렇게 첫 스승에게 배우고 의사가 되는 길의 문턱에서, 우리는 선서를 합니다. 흔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부르죠. 다만 정확히 말씀드리면, 오늘날 졸업식에서 낭독하는 것은 2천 년 전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그 정신을 현대에 맞게 고친 '제네바 선언' 형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옛 조항 대신,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약속으로요.

그 정신은 흔히 이렇게 요약됩니다 — "무엇보다, 해를 끼치지 말라." 저는 이 한 줄을 참 좋아합니다. 의학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에 취하기 쉬운데, 이 선서는 늘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돌아보게 하니까요.

이 세 가지가 제 진료에 남긴 것

해부학은 저에게 사람의 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경외를 가르쳤고, 시신기증은 내가 받은 것에 늘 빚지고 있다는 감사를 남겼으며, 선서는 먼저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증 환자를 볼 때, 되도록 덜 침습적이고 안전한 길부터 찾으려 합니다. '수술 없이, 기능을 되찾게'라는 재활의학의 태도도 결국 그 첫 마음과 닿아 있어요.

"의학은 지식이기 전에,

한 사람의 몸과 삶을 다루는 일입니다."

넷다양한 생각의 끝에서

해부학·시신기증·히포크라테스 선서. 언뜻 서로 먼 이야기 같지만, 저에겐 하나의 선으로 이어집니다. 누군가의 헌신 위에서 배우고, 그 배움을 약속으로 지킨다.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의사는 그저 '몸을 고치는 기술자'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진료실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몸을 마주하다 보면, 자칫 사람을 '증상'으로만 보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스무 살의 그 실습실을 떠올립니다. 말없이 저를 가르쳐 주신 첫 스승, 그리고 그분이 남긴 무게를요. 몸 앞에서 겸손할 것 — 그게 제가 이 세 가지에서 배운 가장 큰 한 가지입니다.

3줄 요약

의대생이 처음 죽음을 마주하는 해부학 실습의 몸은 '무언의 첫 스승'으로 불리며, 이는 생전에 스스로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의 조용하고 큰 사랑 위에 서 있습니다.

의사됨의 문턱에서 하는 선서(오늘날엔 대개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현대화한 '제네바 선언')는 "무엇보다 해를 끼치지 말라"는 다짐으로 요약됩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로 이어집니다 — 누군가의 헌신 위에서 배우고, 그 배움을 약속으로 지키는 것. 의학은 지식이기 전에 한 사람을 다루는 일이며,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해부학의 첫 스승과 시신기증자의 헌신, 그리고 의사의 선서는 저에게 '의학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세 개의 뿌리입니다. 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경외, 받은 것에 대한 감사, 먼저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다짐 — 이 마음들이 지금도 제가 환자를 대하는 방식의 바탕입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이 겸손한 마음을 오래 지키는 의사이고 싶습니다. 오늘 이 글이, 의료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말없이 저를 가르쳐 주신 모든 첫 스승들과, 그 결정을 하신 분들·유가족께 이 글로나마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오늘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별내에서 여러분의 몸과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이 글은 원장이 의학을 대하는 마음을 담은 인문 칼럼입니다. 허리·목·무릎 통증과 재활이 필요하시면, '수술보다 안전한 길부터' 함께 찾아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AI 활용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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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의학 교육과 의료 윤리에 대한 원장 개인의 생각을 담은 인문 칼럼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제네바 선언 등에 대한 서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개괄이며, 세부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시신기증의 절차·요건은 관련 법령과 각 기관의 방침에 따라 다르므로, 관심이 있으시면 해당 의과대학·기관에 정확히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기관·개인을 지칭하거나 홍보할 의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