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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서울대 공대 간 친구, 의대 간 나 — 부러움이 알려준 것

연세편한재활의학과의원 · 홍진오 원장  |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재수 시절,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험을 보던 친구가 있습니다. RenaAi 최병근 대표인데, 그해가 끝나고 그 친구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로, 저는 의대로 갔습니다. 스무 살에 갈라진 두 길이 이십 년쯤 지나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그 친구를 보며 느낀 부러움이 저에게 무엇을 알려줬는지 오늘 적어보려 합니다. 진로를 앞둔 자녀를 두신 별내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무조건 의대라던데, 맞나요?"

"아이가 공대를 가겠다는데 말려야 할까요?"

"원장님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세요?"

PART 1

그 친구가 걸어온 길

그 친구는 공대를 나온 뒤 스위스로, 다시 미국으로 공부하러 다녀왔습니다. 영어도 저보다 훨씬 잘해요. 그러곤 펀드매니저로 일했습니다. 경제 방송에 나온 걸 우연히 보고, 아는 얼굴이 화면에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AI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 사람의 이동 경로예요. 공학에서 금융으로, 금융에서 AI로. 얼핏 보면 제각각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로 이어집니다. 숫자로 세상을 읽는 방법을 계속 갈아타며 넓혀온 셈이더군요.

가끔 만나서 근황을 들으면 저는 대체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새삼 느낍니다. 우리는 같은 교실에서 출발했는데, 지금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고 있구나.

PART 2

솔직히, 부럽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솔직해지겠습니다. 부럽습니다. 감추지 않을게요. 사람이니까요.

저는 매일 진료실에서 한 분, 한 분을 마주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오전에 40-50 명의 환자들을 뵈면 오전이 다 갑니다. 그 친구는 판을 키우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를 만들면 그게 여러 곳에서 동시에 돌아가는 세계예요. 저는 시간을 한 사람씩 나눠 쓰고, 그 친구는 만든 것을 복제해서 씁니다. 그 차이가 가끔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부러움을 며칠 곱씹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더군요. 그리고 그 정리된 마음이 오늘 이 글이 됐습니다.

PART 3

돌아보니 공부부터 달랐습니다

한참 뒤에 서로 어떻게 공부했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제일 놀랐습니다. 우리는 '공부'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더군요.

그 친구의 공부

원리 몇 개를 깊이 이해한다

모르는 문제는 유도해서 만들어낸다

처음 보는 문제 앞에서 강해진다

지식을 도구로 쓴다

제 공부

사실을 방대하게 축적한다

모르는 건 유도할 방법이 없다

아는 양이 곧 판단의 재료가 된다

지식을 몸에 새긴다

신경이 왜 하필 그 근육을 지배하는지에는 논리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생긴 겁니다. 유도할 수 없으니 외우는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그 친구는 공식 몇 개를 손에 쥐고 처음 보는 문제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쪽이 더 우수한 공부냐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루는 지식의 성질이 다른 것뿐이에요. 세상의 규칙을 다루는 학문에서는 이해가 무기가 되고, 사람의 몸이라는 '이미 만들어진 사실'을 다루는 학문에서는 축적이 무기가 됩니다. 아이가 어느 쪽에서 힘이 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게, 어느 대학에 보낼지보다 훨씬 앞선 질문이라고 봅니다.

PART 4

그래서 부모님들께

요즘 "무조건 의대"라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의대가 유일한 정답이 아니듯, 공대가 정답인 것도 아닙니다. 제 친구가 잘 풀린 건 서울대 간판 때문도, 공대라서도 아니었습니다.

1. 좋아하는 것을 계속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공학이 좋았고, 금융이 궁금했고, AI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씩 파고들며 실력을 쌓은 시간이 지금의 그 친구를 만들었어요. 학과 이름이 만든 게 아닙니다.

2. 그리고 저도 제 자리를 좁혀왔습니다

저는 의학에서 재활로, 다시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로 범위를 좁혀왔습니다. 넓히는 사람이 있고 좁히는 사람이 있어요. 좁히는 것도 하나의 전략입니다.

3. 각자 눈이 반짝이는 지점이 달랐습니다

그 친구는 숫자와 기술, 세상의 큰 판에서 눈이 반짝였고, 저는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몸을 만지는 일에 마음이 갔습니다. 재수 교실에서 이미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 아이가 의대를 원하지 않는다고, 공대나 다른 길을 가고 싶어 한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반대로 아이가 정말 사람을 돌보는 일에 마음이 간다면 그 길도 충분히 값집니다. 중요한 건 '어느 과'가 아니라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는가'예요.

"부러움은 내 길이 틀렸다는 신호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이 모두 값지다는 증거였습니다."

정직하게

몇 가지는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첫째, 이건 제 친구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공대를 나오면 이렇게 된다는 뜻이 전혀 아니에요. 잘된 사례 하나를 보고 길을 정하는 건 위험합니다. 그 친구 곁에도 잘 풀리지 않은 시기가 분명히 있었고, 저는 그 시기를 다 알지 못합니다. 둘째, 저는 그 친구가 하는 일에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이 글은 특정 회사나 사업을 소개하려는 글이 아니라,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분들께 드리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셋째, 저 역시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부럽다는 말과 후회한다는 말은 다르니까요. 진료실에서 환자분이 "이제 안 아파요" 하고 웃으실 때의 기쁨을, 저는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3줄 요약

재수 시절 같은 교실에 있던 친구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로, 저는 의대로 갔습니다. 그 친구는 공학에서 금융으로, 다시 AI로 넓혀갔고 저는 의학에서 재활로 좁혀왔습니다.

돌아보니 공부의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 공학은 원리를 이해해 모르는 문제를 유도해내고, 의학은 유도할 방법이 없어 축적합니다. 우열이 아니라 다루는 지식의 성질이 다른 것입니다.

친구가 잘 풀린 건 학과 이름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계속 파고든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과'보다 '무엇을 할 때 눈이 반짝이는가'를 먼저 물어봐 주세요. 부러움은 내 길이 틀렸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저와 제 친구는 같은 재수 교실에서 출발해 한 명은 공대로, 한 명은 의대로 갔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일하고 있고, 솔직히 부럽습니다. 하지만 그 부러움이 며칠 만에 알려준 건 이것이었어요. 정답인 길 같은 건 없었고, 각자 좋아하는 것을 파고든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답게 산다는 것. 그러니 아이의 진로 앞에서 '의대냐 아니냐'를 묻기 전에, '이 아이는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는가'를 먼저 물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제 진료실에서 제 길을 갑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가는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하면서요.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서로를 응원할 수 있다는 것 — 어쩌면 그게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아이의 진로로 마음 쓰이는 별내 부모님들께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진료차 오셨다가 궁금한 이야기가 있으시면 편하게 나눠 주세요. 수험생 자녀분이 오래 앉아 있느라 목·어깨·허리가 힘들어한다면 자세와 스트레칭도 함께 점검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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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원장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담은 칼럼이며, 특정 학과·직업·진로의 우열을 평가하거나 진학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인물의 이력은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사실에 근거해 기술하였으며, 특정 기업이나 사업을 홍보할 목적이 없고 필자는 해당 사업과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개인의 사례는 일반화할 수 없으므로 참고로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본 글은 의학적 진단·치료에 대한 안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