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컬럼만약에 제가 회사원이었다면 — 별내에…
에세이

만약에 제가 회사원이었다면 — 별내에서 얻은 것

연세편한재활의학과의원 · 홍진오 원장  |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얼마 전 진료 오신 분이 어깨를 짚으며 회사 이야기를 한참 하시다가, 문득 웃으면서 이러시더군요. "원장님은 회사 안 다녀보셨죠? 그래서 이 마음 모르실 거예요." 맞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스무 살 무렵에 진로가 정해진 뒤로 한 번도 그 바깥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상상해 봤어요. 내가 만약 회사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오늘은 조금 사적인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원장님은 회사 안 다녀보셨죠?"

"의사는 좋겠어요, 정년도 없고."

"다시 태어나도 의사 하실 거예요?"

PART 1

상상해 봤습니다 — 그쪽의 하루

아마도 이런 하루

아침 지하철에 실려 갑니다. 사무실에 앉아 어제 못 끝낸 자료를 열고, 오전엔 회의가 두 개 있습니다. 제가 만든 문서가 팀장님을 거쳐 임원 보고로 올라가고, 어딘가에서 결정이 납니다. 점심은 동료들과 먹고, 오후엔 다른 팀과 협업 이슈로 메일을 몇 번 주고받습니다.

분기가 끝나면 숫자로 정리됩니다. 연말에는 고과가 나오고, 몇 년에 한 번 승진이 있고, 먼 훗날엔 정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저는 저녁마다 오늘 회의에서 한 말을 곱씹으며 잠들었을 겁니다.

상상해 보니 그 삶에도 제가 지금 겪는 것과 똑같은 무게가 있더군요. 책임과 평가, 사람 사이의 피로,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다만 그 무게가 놓이는 자리가 다를 뿐입니다.

PART 2

솔직히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진료실에서 회사 다니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운 게 세 가지 있어요.

1. 함께 결정할 사람이 있다는 것

가장 부럽습니다. 회사에는 팀이 있고 선배가 있고, 어려운 판단은 같이 지고 갈 사람이 있잖아요. 진료실에서는 그 문이 닫히면 결정은 결국 저 혼자 내립니다. 이 통증을 좀 더 지켜볼지, 오늘 큰 병원으로 보낼지. 그 몇 초의 무게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에요.

2. 아파도 되는 것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회사원은 몸이 아프면 연차를 쓰고, 그동안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 해 줍니다. 저는 제가 아프면 진료실이 그냥 닫힙니다. 오늘 오시기로 한 분들의 하루가 같이 밀립니다. 그래서 아플 자유가 없어요.

3. 끝이 있다는 것

"의사는 정년이 없어서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맞는 말인데, 뒤집으면 내려놓는 시점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정해진 마침표가 있다는 건 그 다음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건 분명 부러운 조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사가 더 낫다"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각자의 무게가 있을 뿐이더군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의 어깨 결림 속에는 대개 그분이 감당하고 계신 무게가 들어 있습니다. 그걸 알고 나서부터 "어깨 좀 푸세요"라는 말이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어요.

PART 3

그런데 아마 저는 못 했을 것 같습니다

부럽다고 해서 그 삶을 잘 살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마 오래 못 버텼을 거예요. 제 성격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한 일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든 것이 여러 손을 거쳐 어딘가에서 숫자로 정리되는 구조 안에서, "오늘 내가 한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닿았는지"를 알 수 없다면 저는 금방 헛헛해졌을 겁니다. 분기 실적으로 제 한 해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도 잘 못 견뎠을 것 같고요.

그리고 하나 더. 저는 같은 사람을 오래 보는 일에 유난히 마음을 씁니다. 부서를 옮기고 담당이 바뀌는 구조보다, 몇 년 동안 같은 분의 무릎을 계속 보는 쪽이 저한테는 훨씬 맞았습니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인 것 같아요.

PART 4

대신 제가 받은 것 — 별내에서

그래서 지금 제 자리에서 받은 것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회사에 다녔다면 아마 못 가졌을 것들이에요.

"이번 주에 계단으로 올라와 봤어요"

제 일의 성과는 분기 보고서가 아니라 이런 문장으로 옵니다. 몇 달 전 부축을 받아 들어오셨던 분이 어느 날 문을 열고 혼자 걸어 들어오실 때, 제가 한 일의 결과가 눈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보다 명확한 평가지표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마트에서 환자분을 만납니다

별내는 그런 동네입니다. 장을 보다가 "원장님!" 하고 인사를 받습니다. 도시의 익명성과는 정반대예요. 저는 이 동네에서 익명일 수 없는 삶을 삽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제는 이게 제 직업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일이 사는 곳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요.

한 분을 몇 년째 봅니다

처음엔 무릎으로 오셨다가, 나중엔 어깨로 오시고, 어느 날은 자녀분을 데리고 오십니다. 그 사이에 그분의 사정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사람을 알고 나서 보는 통증은 처음 보는 통증과 다릅니다. 이건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 돈으로도 실력으로도 못 삽니다.

지역을 책임진다는 감각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실제 감각은 소박합니다. 이 동네 분들의 허리와 무릎과 어깨는 내가 챙긴다는 마음이요. 그 마음이 있으면 야간이나 주말에 진료실을 여는 일이 덜 힘들어집니다. 어차피 우리 동네니까요.

"분기 실적 대신, 다시 걷게 된 걸음으로

제 한 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저는 그게 제 몫으로 온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게

오해가 없었으면 해서 덧붙입니다. 직업에 우열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저는 회사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니 그 삶의 진짜 무게를 알지 못하고, 위에 적은 상상도 어디까지나 바깥에서 그려본 그림일 뿐이에요. 실제로 겪고 계신 분들께는 제 상상이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가 늘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판단을 혼자 져야 하는 날이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좋아지지 않아 미안한 날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 어느 자리든 무게는 있고, 자기 기질에 맞는 무게를 지고 있으면 그게 행복에 가깝더라는 것. 저는 운 좋게 제게 맞는 무게를 만났을 뿐입니다.

3줄 요약

회사원의 삶을 상상해 보니 부러운 것이 셋 있었습니다 — 어려운 결정을 함께 질 사람이 있다는 것, 아플 자유가 있다는 것(대신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정년이라는 마침표가 있어 다음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저는 아마 오래 못 버텼을 것 같습니다. 제 일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같은 사람을 오래 보는 일에 마음이 가는 기질이라서요. 능력이 아니라 기질의 문제입니다.

대신 받은 것 — "이번 주에 계단으로 올라와 봤어요"라는 성과지표, 마트에서 인사를 받는 익명일 수 없는 삶, 한 분을 몇 년째 보며 쌓이는 시간, 그리고 이 동네를 책임진다는 감각. 어느 자리든 무게는 있고, 기질에 맞는 무게를 지면 그게 행복에 가깝습니다.

정리하자면, 만약 제가 회사원이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성실함을 배웠을 겁니다. 아마 잘 해내고 싶어서 똑같이 애썼겠지요. 다만 그 삶에서 제가 지금만큼 행복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한 일이 누구의 어떤 하루를 바꿨는지 얼굴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있고, 그 얼굴들이 대부분 이 동네 분들이라는 것 — 그게 제가 받은 몫입니다.

오늘도 진료실 문을 열면 어제 뵀던 분이 들어오시고, 지난주보다 조금 나아진 걸음을 보여주십니다. 별내에서 여러분의 허리와 무릎과 어깨를 맡고 있다는 것, 저는 그 일이 참 좋습니다. 오래 건강하게 곁에 있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허리·목·무릎 통증으로 일상이 불편하시거나, 오래 앉아 일하시느라 어깨와 목이 굳으셨다면 편하게 상담 오세요. 통증의 원인을 함께 찾고 운동·도수·물리치료 계획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어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도 오시기 편합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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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소회를 담은 에세이이며, 특정 직업이나 진로의 우열을 평가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본문의 회사 생활 묘사는 필자가 바깥에서 상상해 본 것으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본 글은 의학적 진단·치료에 대한 안내가 아니며, 통증이 지속되거나 심해지는 경우에는 전문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