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은 비영리인데 왜 수익을 좇을까 — 불편한 진실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진료실에서 이런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대학병원 갔더니 검사만 잔뜩 하고 3분 만에 나왔어요. 거기 비영리 아니에요? 왜 그렇게 돈을 밝혀요?" 화가 나실 만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특정 병원을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라, 제가 큰 병원에서 일할 때 알게 된 구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 구조 안에 있습니다.
"비영리라면서 왜 돈 얘기가 나와요?"
"왜 대학병원은 3분 만에 끝나죠?"
"검사를 이렇게 많이 해야 하나요?"
PART 1
'비영리'는 '돈을 벌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은 원칙적으로 비영리 기관만 열 수 있습니다. 학교법인, 의료법인, 재단법인 같은 형태로요. 그런데 이 '비영리'라는 말의 뜻이 생각과 다릅니다.
비영리의 진짜 의미
비영리는 "이익을 내면 안 된다"가 아니라 "이익을 개인이나 주주에게 나눠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남은 돈은 다시 그 기관에 써야 합니다. 건물을 짓고, 장비를 사고, 사람을 뽑고, 연구를 하는 데요.
그러니 비영리 기관도 흑자를 내야 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흑자를 내지 못하면 그 병원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적자가 쌓이면 장비를 못 바꾸고, 사람을 못 뽑고, 결국 문을 닫습니다. 비영리라는 말이 "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PART 2
병원은 생각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듭니다
큰 병원이 돌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나열해 보면 감이 오실 겁니다.
1. 사람 — 가장 큰 비용
의사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영상의학기사, 물리치료사, 약사, 원무·행정, 청소, 보안까지. 병원은 극단적인 노동집약 산업이고, 지출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입니다.
2. 장비 — 사고 끝이 아닙니다
영상 장비 하나가 상당한 금액인 데다, 몇 년마다 교체해야 하고 유지보수 계약이 매년 나갑니다. 사는 순간부터 낡기 시작하는 자산입니다.
3. 돈이 안 되는 부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응급실, 중환자실, 신생아실, 분만, 중증외상 같은 부서는 운영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부서들이 없으면 대학병원이 아니죠. 어딘가에서 번 돈으로 이곳을 메워야 합니다.
4. 교육과 연구는 돈을 씁니다
대학병원의 사명 중 하나가 다음 세대 의사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육은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과 인력이 더 들어요. 연구도 마찬가지고요. 사명을 수행하려면 그 비용을 벌어와야 합니다.
PART 3
여기서 불편한 진실이 시작됩니다
이제 핵심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에서는 의료 행위마다 정해진 값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항목은 그 값이 실제로 드는 비용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있어 왔습니다. 특히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드는 필수 진료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병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뻔합니다. 손해가 나는 진료를 계속하려면, 어딘가에서 그만큼을 벌어야 합니다. 그 결과 병원은 이런 선택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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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환자를 더 많이 봅니다. 한 사람당 시간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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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장비 가동률을 올립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나은 영역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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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 늘어납니다. 그쪽은 값을 병원이 정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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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이 나지 않는 과는 지원자가 줄어듭니다. 병원도 그 과를 늘리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겪는 "3분 진료"와 "검사부터 하자"는 여기서 나옵니다. 의사 개인이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하루에 봐야 할 숫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의사도 5분, 10분 쓰고 싶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PART 4
그런데 이게 누구 탓일까요
여기서 저는 조심스러워집니다. 병원 탓일까요, 의사 탓일까요, 정부 탓일까요. 저는 어느 하나를 지목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이렇게 보면 조금 정리가 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원하면 바로 큰 병원에 갈 수 있습니다
진료비 본인 부담이 세계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검사와 수술까지 대기가 짧습니다
어디 살든 병원 접근성이 좋습니다
그 대가로 치르는 것
한 사람당 진료 시간이 짧습니다
의료진의 노동 강도가 높습니다
필수 진료과가 버티기 어렵습니다
병원은 다른 데서 메워야 합니다
이 두 칸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우리나라 의료의 접근성과 저렴함은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성취인데, 그 성취는 상당 부분 의료진의 노동 강도와 낮은 값으로 지탱되어 왔습니다. 왼쪽을 그대로 두고 오른쪽만 고치는 방법은 아쉽게도 없습니다. 어딘가에서는 비용을 치러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는 말도, "병원이 다 문제다"는 말도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의 양심 문제로 환원하면 구조는 그대로 남습니다. 물론 구조가 그렇다고 해서 과잉 진료가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구조를 이해하는 것과 개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은 다른 이야기예요.
PART 5
그럼 환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1. 대학병원은 대학병원이 필요한 일에
중증 질환, 희귀 질환, 큰 수술, 여러 곳에서 진단이 안 나올 때 — 이럴 때 가는 곳입니다. 감기나 단순 통증으로 3차 병원에 가시면 정작 그 병원이 필요한 분의 자리가 줄어들고, 본인도 짧은 진료를 겪게 됩니다.
2. 3분을 준비해서 가세요
주어진 시간이 짧다면 그 시간을 밀도 있게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부터,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불편한지를 미리 메모해 가시고, 궁금한 것 세 가지를 적어 가세요. 3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3. 기록과 영상을 챙겨 가세요
이전 병원의 진료기록과 영상 CD가 있으면 같은 검사를 다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복 검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4. 동네에서 할 일은 동네에서
만성 통증 관리, 재활, 정기적인 경과 관찰은 가까운 곳에서 자주가 유리합니다. 왕복 세 시간 걸려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보다 결과가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비영리라는 말은
'돈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번 돈을 나눠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정직하게
네 가지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첫째, 이 글은 특정 병원을 비판하는 글이 아닙니다. 제가 수련하고 일했던 곳들을 포함해, 큰 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일하는 분들을 저는 존경합니다. 둘째, 저 역시 같은 구조 안에 있습니다. 개원의도 마찬가지예요. 한 분께 시간을 더 쓰면 그만큼 덜 벌게 되고, 그 사이에서 매일 선택합니다. 남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셋째,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과잉 진료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조가 어렵다는 것과 개인이 선을 넘는 것은 별개이고, 후자는 후자대로 걸러져야 합니다. 넷째, 저는 해법을 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수가를 올리면 보험료나 세금이 오르고, 그대로 두면 필수 진료가 버티기 어렵습니다. 쉬운 답이 있었다면 진작 풀렸을 문제겠지요. 다만 구조를 알고 나면 진료실에서 만나는 짧은 3분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 오늘은 그 이야기까지만 드립니다.
3줄 요약
'비영리'는 이익을 내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익을 개인이 나눠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남은 돈은 기관에 재투자해야 하고, 흑자를 못 내면 병원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병원에는 인건비·장비 교체·유지보수가 계속 들고, 응급실·중환자실·분만처럼 운영할수록 손해가 나는 부서와 교육·연구까지 떠안습니다. 여기에 일부 진료 항목의 값이 실제 비용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겹치면서, 병원은 외래 회전·검사·비급여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3분 진료"는 대체로 개인의 불친절이 아니라 이 구조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빠른 접근성과 낮은 본인 부담은 동전의 한 면이고, 짧은 진료 시간과 높은 노동 강도, 필수 진료과의 어려움은 그 뒷면입니다. 환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 대학병원은 중증·수술에, 3분을 준비해서(질문 3가지 메모), 기록과 영상을 지참, 만성 관리와 재활은 가까운 곳에서.
정리하자면, 대학병원이 수익을 신경 쓰는 것은 탐욕이라기보다 생존의 조건에 가깝습니다. 비영리라는 이름은 번 돈을 나눠 갖지 않는다는 약속이지,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우리가 누리는 값싸고 빠른 의료의 뒷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정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구조를 알고 나면 화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 눈앞의 의사에게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정해야 할 무언가로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3분은 짧습니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저는 그 안에 있어 봐서 압니다. 그래서 저는 개원을 하며 시간을 조금 더 쓰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가능하도록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설명이 짧아 잘 이해되지 않으셨다면, 진료기록과 영상 자료를 가지고 편하게 오세요. 어떤 상태인지 알아듣게 설명해 드리고, 지금 필요한 것과 큰 병원에서 확인해야 할 것을 함께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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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우리나라 의료 제도와 병원 운영 구조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 전달·교육 목적의 칼럼이며, 특정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을 비판·비방할 목적이 없습니다. 본문의 서술은 널리 알려진 제도의 개요와 필자의 경험에 근거한 것으로, 개별 의료기관의 회계·운영 상황이나 구체적인 수가 수준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제도와 관련 규정은 개정될 수 있으므로 정확한 내용은 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계 기관의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본 글은 의학적 진단·치료에 대한 안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