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 — 무릎은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올 때 다칩니다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진료실 풍경이 바뀝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산에 가시는 분들이 늘고, 한두 주 뒤부터 무릎을 잡고 오시는 분들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거의 같습니다.
"올라갈 때는 멀쩡했는데, 내려오면서부터 시큰거리더라고요."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등산에서 무릎이 상하는 것은 대부분 하산 구간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 하나만 알고 계셔도 가을 산행이 꽤 달라집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산에 가지 마시라는 글이 아닙니다. 덜 다치고 오래 다니시라는 글입니다.
"다녀온 다음 날 계단을 못 내려가겠어요."
"발톱이 까맣게 멍들었습니다."
"내려오다 한 번 삐끗했는데 아직 부어 있어요."
PART 1
왜 내려올 때인가
이유가 세 가지입니다. 셋이 겹치기 때문에 하산이 위험합니다.
내려올 때 몸에서 벌어지는 일
① 무릎이 받는 힘이 훨씬 큽니다
평지를 걸을 때도 무릎에는 체중의 몇 배가 실립니다. 그런데 내리막에서는 한 걸음마다 떨어지는 몸을 무릎이 받아 내야 해서 그 힘이 더 커집니다. 올라갈 때는 근육이 몸을 밀어 올리지만, 내려올 때는 관절이 충격을 받는 구조입니다.
② 근육이 늘어나면서 버팁니다
조금 전문적이지만 중요한 부분입니다. 내리막에서 허벅지 앞 근육은 짧아지며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면서 버팁니다.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은 방식인데, 이 형태의 수축이 근육에 훨씬 큰 부담을 주고 근육통도 심하게 남깁니다. 다녀온 다음 날 계단을 못 내려가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③ 하필 지쳐 있을 때 합니다
가장 결정적입니다. 하산은 이미 몇 시간 걸어 다리에 힘이 빠진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근육이 지치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 힘이 그대로 관절과 인대로 갑니다. 발도 헛디디게 되고요. 사고가 하산 후반부에 몰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올라가는 건 체력 문제이고, 내려오는 건 기술 문제입니다." 체력은 하루아침에 안 늘지만 내려오는 방법은 오늘 바꿀 수 있습니다.
PART 2
가을에 실제로 많이 오시는 부위
1. 무릎 앞쪽 — 가장 많습니다
무릎뼈 주변이 시큰거리고 계단을 내려갈 때 유독 아픕니다. 내리막에서 반복된 부담이 무릎뼈 뒤쪽 연골면을 자극한 경우가 흔합니다. 쪼그려 앉기와 계단 내려가기에서 특히 아픈 것이 특징입니다. 전에 무릎 통증 글에서 다뤘습니다.
2. 무릎 안쪽 — 비틀린 순간
돌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무릎이 안으로 꺾인 경우입니다. 붓고, 구부렸다 펼 때 걸리는 느낌이 있다면 연골판 손상을 확인합니다. 전에 반월상연골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다친 직후 몇 시간 만에 부풀어 오르면 그건 그날 바로 진료가 필요합니다.
3. 발목 — 하산 중 헛디딤
가장 흔한 급성 부상입니다. 발목은 한 번 삐면 인대가 늘어난 채로 아물어 다시 삐기 쉬워집니다. 초기 며칠의 처치가 이후를 크게 좌우합니다. 전에 발목 염좌 글에서 다뤘습니다.
4. 아킬레스건과 종아리
오르막에서 발목을 많이 쓰신 뒤에 옵니다. 뒤꿈치 위쪽이 뻣뻣하고 아침 첫 발이 아프다면 확인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산행 횟수를 늘리신 분에게 잘 생깁니다.
5. 허리와 발바닥
무거운 배낭과 앞으로 숙인 자세가 허리에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딱딱한 등산화로 오래 걸으면 발바닥 앞쪽과 뒤꿈치에 통증이 오기도 합니다. 발톱이 까맣게 멍드는 것은 신발 안에서 발이 앞으로 밀렸다는 신호입니다.
"올라가는 건 체력이고
내려오는 건 기술입니다."
PART 3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흔한 오해들
✕ "등산은 무릎에 안 좋으니 하지 말아야죠"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등산은 하체 근력과 심폐 지구력에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문제는 등산 자체가 아니라 준비 없이, 무리하게, 잘못 내려오는 것입니다. 다만 이미 무릎에 문제가 있으신 분은 코스 선택이 달라져야 합니다.
✕ "스틱은 나이 드신 분들이나 쓰는 거죠"
가장 바꾸고 싶은 인식입니다. 스틱을 쓰면 하산할 때 무릎이 받는 부담을 상당히 덜어 줍니다. 젊고 체력이 좋으실수록 더 험한 코스를 더 빠르게 내려오시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한 개보다 두 개가 낫습니다.
✕ "무릎보호대를 차면 괜찮습니다"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보호대가 근력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보호대를 믿고 평소보다 무리하시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그리고 종일 조이는 것은 권해 드리지 않습니다.
✕ "체력만 좋으면 괜찮죠"
심폐 체력과 무릎이 버티는 힘은 다릅니다. 숨은 안 차는데 무릎이 아픈 분들이 실제로 많습니다. 필요한 것은 허벅지 앞쪽과 엉덩이 근육이며, 이건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 "내려올 때 뛰면 빨리 내려오죠"
가장 위험한 습관입니다. 뛰어 내려오면 무릎과 발목이 받는 충격이 크게 늘고, 지친 상태에서는 헛디딜 확률도 함께 올라갑니다. 내려오는 시간을 올라간 시간만큼은 잡아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PART 4
내려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산에 가신다면 이것만 바꾸셔도 다릅니다.
하산할 때 지킬 다섯 가지
① 보폭을 줄이세요
가장 효과가 큽니다. 한 걸음이 클수록 떨어지는 높이가 커지고 충격도 커집니다. 종종걸음처럼 작게 디디시면 무릎이 받는 힘이 확실히 줄어듭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입니다.
② 무릎을 살짝 굽힌 채로 디디세요
다리를 쭉 편 채 착지하면 충격이 관절로 그대로 갑니다. 무릎을 약간 굽힌 상태로 디디면 근육이 완충 작용을 합니다. 발은 뒤꿈치부터 쿵 찍지 마시고 발 전체로 부드럽게 놓으세요.
③ 스틱은 두 개, 조금 길게
내려올 때는 오르막보다 스틱을 조금 길게 조절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몸보다 앞쪽 아래에 짚어 체중을 나눠 실으세요. 팔로 버티는 만큼 무릎이 덜 받습니다.
④ 가파른 곳은 비스듬히
급경사를 정면으로 내려오면 부담이 집중됩니다.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꿔 가며 내려오면 경사가 완만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계단식 구간에서는 난간이나 나무를 잡으셔도 좋습니다.
⑤ 쉬는 시점을 정해 두세요
지쳐서 쉬는 것이 아니라 지치기 전에 쉬는 것입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 뒤에 내려오는 구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30분에 한 번, 짧게라도 앉으세요.
준비물에서 두 가지만 짚겠습니다. 등산화는 발가락 앞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내리막에서 발이 앞으로 밀리기 때문에 딱 맞는 신발은 발톱이 멍듭니다. 그리고 배낭은 무게를 줄이고 끈을 조여 등에 붙이세요. 가방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을 허리와 무릎이 잡아야 합니다. 전에 가방 무게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드렸습니다.
PART 5
다녀오신 뒤에
1. 근육통과 관절 통증을 구분하세요
가장 중요한 구분입니다. 허벅지 전체가 뻐근하고 눌러서 아픈 것은 근육통이라 며칠이면 좋아집니다. 반면 무릎 한 지점이 콕 집어 아프거나, 붓거나, 구부릴 때 걸리는 느낌은 다르게 봅니다.
2. 붓기가 있으면 그날은 차게
부었거나 열감이 있으면 얼음찜질과 다리 올려 두기입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시는 것은 부기가 있을 때는 권해 드리지 않습니다. 며칠 지나 뻐근한 단계에서는 반대로 따뜻하게 하시면 됩니다.
3. 다음 날 완전히 쉬지는 마세요
근육통이 있을 때 아예 안 움직이면 더 오래갑니다. 평지를 가볍게 걷고 허벅지와 종아리를 부드럽게 늘려 주시는 편이 회복이 빠릅니다.
4. 다음 산행을 위해 근력을 만드세요
가장 확실한 예방입니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 벽에 기대 앉는 자세로 버티기, 옆으로 다리 들기. 산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에 하는 것이 무릎을 지킵니다. 전에 운동치료 글에서 말씀드린 순서와 같습니다.
5. 한 주 지나도 그대로면 확인하세요
기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산행 뒤 통증은 대개 며칠 안에 줄어듭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이거나 계단에서 여전히 아프다면 근육통이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미루지 마세요
다친 뒤 한두 시간 만에 무릎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를 때 — 그날 진료가 필요합니다
"뚝" 소리와 함께 아프고 힘이 빠졌을 때, 무릎이 걸려 펴지지 않을 때
체중을 딛기 어렵거나 절뚝거릴 때, 발목이 심하게 붓고 멍이 들 때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저림이 발끝까지 이어질 때
관절이 붓고 뜨거우며 벌겋게 변하고 열이 날 때 — 즉시 진료
한쪽 종아리만 붓고 아프며 따뜻할 때, 숨이 차거나 가슴이 아플 때 — 즉시 응급실
일주일이 지나도 통증이 그대로이거나 점점 심해질 때
정직하게
네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등산을 말리는 글이 아닙니다. 하체 근력과 심폐 지구력에 좋은 운동이고, 저도 권해 드립니다. 다만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하는 것과 지친 상태로 급하게 내려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 이미 무릎에 문제가 있으신 분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관절염이 진행된 분이나 최근 다치신 분은 코스와 시기를 개별적으로 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무조건 괜찮다"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셋째, 보호대나 특정 제품을 권해 드리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근력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넷째, 산에서 다치셨을 때 무리해서 내려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 걸어 내려오다 손상이 커지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3줄 요약
등산에서 무릎이 상하는 것은 대부분 하산 구간입니다. 내리막에서는 관절이 충격을 받는 구조인 데다, 근육이 늘어나며 버티는 방식이라 부담이 크고, 하필 지친 상태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내려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폭을 줄이고,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디디고, 스틱을 두 개 쓰고, 급경사는 지그재그로, 지치기 전에 쉬는 것. 등산화는 발가락 앞에 여유가 있어야 발톱이 멍들지 않습니다.
다녀오신 뒤에는 근육통과 관절 통증을 구분하세요. 허벅지 전체가 뻐근한 것은 며칠이면 낫지만, 한 지점이 콕 아프거나 붓거나 걸리는 느낌이 있으면 다릅니다. 특히 다친 직후 급격히 붓거나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라면 확인하셔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가을 산은 가시라고 권해 드리는 운동입니다. 다만 매년 10월이면 하산길에서 생긴 문제로 오시는 분들을 반복해서 뵙기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대부분은 조금 천천히, 조금 작게 내려오시기만 해도 피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제가 산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상에서 사진 찍고 도시락 드시고, 내려올 때는 "이제 다 왔다"며 속도를 올리시는 것. 그런데 몸에게는 그때부터가 진짜입니다. 올라갈 때 아껴 둔 다리 힘이 남아 있어야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산에 가신다면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내려올 때 보폭을 반으로. 그거 하나로 다음 날 아침이 달라집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겠습니다.
등산 다녀오신 뒤 무릎이나 발목이 계속 아프시거나, 다녀오면 늘 며칠씩 고생하신다면 편하게 오세요. 근육통인지 확인이 필요한 손상인지 구분해 드리고, 다음 산행을 위한 근력 운동과 내려오는 방법까지 함께 잡아 드리겠습니다. 붓거나 걸리는 느낌이 있는 경우에는 관절 안쪽까지 확인합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어 주말 산행 뒤에도 오실 수 있고, 다산에서는 8호선으로 한 정거장입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본 글은 등산 관련 근골격계 손상 예방에 대한 일반적인 건강 정보 칼럼이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본문에 제시한 보행 방법과 운동, 장비에 관한 내용은 일반적인 권장 사항으로 개인의 관절 상태와 기존 질환, 체력 수준에 따라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통증이 있으신 경우 전문의의 진찰 후 시행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의 효과를 보증하지 않습니다. 외상 직후의 급격한 관절 부종, 파열음과 함께 발생한 통증과 근력 저하, 관절의 잠김, 체중 부하 불가, 관절의 발적·열감과 발열, 사지의 저림이나 근력 저하, 한쪽 하지의 부종과 열감, 호흡 곤란이나 흉통이 있는 경우에는 즉시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회복 기간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특정 방법의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